[특별 기고문] 아빠, 우리의 상징은 뭐야?


주상파울루총영사관 경찰영사 김인호


 봉헤치루 입구에는 우리 상징물이 있습니다. 두 명의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인데 한국의 마을 입구에서 수호신 역할을 하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모티프로 삼았다고 합니다. 한 명은 브라질 사람을, 한명은 한국인을 상징하는 것인데, 한국인과 브라질 사람이 서로 손잡고 잘 살아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매주 금요일 10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반가운 분들과 만납니다. 노인회 어르신 분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양손에 쓰레기 봉투와 청소용 집게를 들고 찌라덴치스 광장에 모입니다. 길거리에 널 부러진 담배꽁초를 주우며 오순도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교민들과 인사도 나누고, 가끔은 민원도 상담해 드리며 산책하듯이 걷는 이 시간이 행복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청소는 항상 “우리 상징물” 앞에서 마칩니다. 

 우리 상징물, 우리를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들이 아빠에게 “우리의 상징”이 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쉽지 않은 대답입니다. 보이는 대로 천하 대장군과 지하 여장군이 우리의 상징일까요?

 우리의 상징은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머리에는 항상 “우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농산물, 우리 회사, 우리 동네, 우리 아빠..., 심지어 우리 와이프라고 까지 말합니다. 내 아내가 아니라, 우리 와이프라니요. 외국인으로서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죠. 

 우리는 공동체 문화의 산물입니다.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와 너희들이 함께 살아 온 문화적 산물입니다. 한국인은 주로 쌀밥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쌀이 밥상에 올라오기 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논을 일구고, 물길을 대고, 모내기를 하고, 벼를 베고, 탈곡까지 하는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벼는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는 까다로운 농작물입니다. 혼자서는 재배할 수 없는 작물이 바로 벼입니다. 한 마을을 중심으로 서로 공동으로 벼농사를 지어야만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문화적 뿌리는 그렇게 벼농사의 역사만큼이나 깊습니다. 

 서양인은 빵을 주로 먹습니다. 밀은 씨만 뿌려놓으면 대체로 어디에서나 잘 자랍니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다 보니 혼자서도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은 우리라는 개념보다는 “나”라는 생각이 먼저 나옵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상징은 우리 상징물에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우리의 상징”은 한국인의 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한인회가 주축이 되어 하는 대학생 의료봉사활동, 노인회의 거리청소 활동과 도시락 나눔 봉사, 한·브 장학회의 차세대 인재육성 장학사업, 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의 사랑의 상품권 나눔 행사, 색소폰 연주 동아리 한울림의 자선단체 모금행사 공연 등 많은 곳에서 우리의 상징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상징은 우리의 위대한 정신입니다.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의 문화입니다. 한류 열풍과 더불어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우리 정신과 문화에 그 바탕이 있습니다. 

 봉헤치루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길 걸으면 우리말이 들려오고, 우리 음식 냄새도 나고 땅 밟는 느낌부터가 다릅니다. 봉헤치루는 작은 한국처럼 느껴집니다. 소중한 곳입니다. 

 매주 금요일, 거리청소를 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수업이 끝나면 의자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쫙 밀어서 교실 끝으로 밀어 넣은 다음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질을 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청소를 시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학생이 교실을 청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브라질에는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고 잘 치우지도 않아 전반적으로 거리는 지저분했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봉헤치루 청소를 하게 된 것이지만요. 청소는 사회적 학습의 기본중의 기본인데 말입니다.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인간만 쓰레기를 생산합니다. 거리가 더러우면 그 오물이 다시 묻어서 우리 집, 우리 가게로 들어옵니다. “우리 가게 앞은 우리가 직접 청소”만 잘해도 봉헤치루 전체는 더 깨끗해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거리가 깨끗해지면 한국음식을 찾는 손님이 더 많아지며 더 활기차게 됩니다. 거리가 지저분한 이유는 거리 자체가 더럽기 때문입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버린 담배꽁초가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심리는 그렇게 작동합니다. 남들도 버리니 나도 버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책감이 쪼개지니까요. 깨끗한 거리에는 사람들이 양심상 함부로 버리지 못합니다. 나 홀로 독박이기 때문이죠.

 4년째 이어지는 청소봉사, 이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우리의 문화로 정착시켜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옛 부터 우리 집 앞은 우리가 쓸었습니다. 우리 집 앞에 쌓인 눈은 우리가 치웠습니다. 앞으로 우리 가게 앞은 우리가 직접 청소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상징을 하나 더 만들었으면 합니다. 

 더러운 곳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더러운 곳에서는 혐오를 느낍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도둑놈은 더러운 곳을 좋아합니다. 거리가 깨끗해지면 도둑놈이 안 옵니다. 자연스레 봉헤치루가 더 안전해집니다. 청결은 최고의 울타리입니다. 봉헤치루는 그 자체로 한국 학교입니다. 문화는 제일 좋은 부의 원천입니다. 브라질 사회가 우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살아있는 학교 그 자체입니다. 우리 말이 들릴 때, 우리의 음식 향기가 날 때,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살려 후세에게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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